세계의 소프트시티를 가다 <12>  최첨단 현대건축 실험의 장, 로테르담

'도시 창조 실험' 지금도 진행중… 戰後 폐허의 공간을 현대·혁신적 건축물로 채워
렌조 피아노의 KPN 빌딩, 피터 블롬의 큐브하우스 등 세계적 건축가 작품 곳곳에
로테르담, 건축을 관광자원 활용… 다양한 기행 프로그램 운영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옛모습을 복구하거나 새로 건설하거나.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공습에 잿더미가 되었던 네덜란드 제2의 도시 로테르담은 후자를 택했다.
살아남은 건물이 별로 없는 폐허를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혁신적인 건물들로 채우기로 했다.
전후 로테르담은 도시 전체가 공사장이었다.

창조와 실험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로테르담은 현대건축의 경연장이다.
건축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받은 렘 쿨하스를 비롯해 렌조 피아노, 알바로 시자, 벤 판 베르켈 등 세계적 건축가들의 독특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시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이 도시에 자리잡은 크고 작은 건축설계 그룹은 베르켈의 UN스튜디오와 MVRDV, KCAP 등 세계적 설계사무소를 포함해 수백 개나 된다.
세계 최대의 건축 자료관이자 박물관인 네덜란드건축연구소(NAI)도 이곳에 있다.
시민들은 자부한다. 네덜란드의 수도는 암스테르담이지만, 건축의 수도는 로테르담이라고.

로테르담의 첫 인상은 그리 낯설지 않다. 고풍스러움을 간직한 유럽의 여느 도시와 달리 현대적 건축물이 많기 때문이다.
시는 건축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자전거, 도보, 유람선 등 여러 방식의 다양한 건축 기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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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다리>
 
로테르담 건축 기행은 이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인 에라스무스 다리에서 출발한다.
마스 강에 걸린 아름다운 다리로, 베르켈이 설계했다. 백조의 긴 목을 닮았다 해서 별명이 '백조'다. 에라스무스는 이 도시 출신인 16세기의 위대한 인문주의자다.

에라스무스 다리 건너편인 마스 강 남안, 콥 반 자우드 지역은 강을 따라 높이 100m 이상인 고층빌딩이 늘어서 '마스의 맨해튼'으로 불린다.
변모를 거듭하는 젊은 도시 로테르담이 느껴지는 곳으로, 1990년대부터 개발이 시작됐다. 렌조 피아노의 KPN 빌딩,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고층 아파트 뉴올리언즈, 주상복합 고층건물 몬테비데오, 로테르담에서 가장 높은 건물(160m)인 마스토렌 등이 만들어내는 날렵한 스카이라인이 인상적이다. KPN 빌딩은 기우뚱한 정면을 하나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이색 건물이다. 바로 옆에는 렘 쿨하스의 스펙터클 야심작 '수직 도시'(일명 '데 로테르담')가 들어선다. 2013년 완공 예정인 이 건물은 3개의 타워 빌딩 안에 사무, 주거, 주차, 쇼핑, 문화시설을 다 집어넣어 도시 기능을 압축한다.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KPN 빌딩. 피사의 사탑처럼 기우뚱하다.jpg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KPN 빌딩. 피사의 사탑처럼 기우뚱하다>

유니레버 사옥. 기존 빌딩 위에 가로로 길게 뻗어나간 건물이다..jpg <유니레버 사옥. 기존 빌딩 위에 가로로 길게 뻗어나간 건물이다.>

MVRDV가 설계한 마켓홀 조감도. 터널형 아파트 안쪽은 시장이다.jpg <MVRDV가 설계한 마켓홀 조감도. 터널형 아파트 안쪽은 시장이다>


시청이 있는 도심 주변에도 저마다 개성을 자랑하는 흥미로운 건축물이 많다. 외벽을 빨간 수직선들로 치장한 레드 애플 아파트는 가구마다 창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바로 옆 빌렘베르프 빌딩은 건물 중간을 비스듬히 잘라낸 듯한 유리 경사면이 인상적이다. 영화 '성룡의 CIA'에서 성룡이 바로 이 유리판을 타고 도망친다.

도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별난 건물은 큐브하우스다. 기둥 위에 주사위 모서리를 얹어놓은 듯한 모양이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만 같지만, 38가구가 사는 아파트다. 큐브 하나가 한 가구다. 해체주의 건축가 피터 블롬이 연필을 세운 듯한 아파트인 펜슬하우스와 세트로 설계했는데, 1984년 건립 이래 명물이 되었다. 블롬은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듯 큐브로 숲을 만들었다. 보행 육교 위에 지어 그 아래로는 차량이 다닌다. 실험적이다 못해 괴상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런 건물을 허용한 로테르담 시와 시민 의식이 놀랍다.

로테르담 시의 도심 개발 프로젝트 담당자인 안네테 마티센은 이처럼 과감한 건물들이 들어설 수 있는 배경으로 항만도시 특유의 개방성을 꼽는다. 그는 "로테르담 시민들은 현실적이고 추진력이 강하며, 실험적인 건축을 즐기는 열린 자세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추진 중인 새로운 건축 프로젝트들은 로테르담의 미래 지향성을 더욱 잘 보여준다. 시내 블라크광장에 들어설 마켓홀은 높이 40m 길이 165m의 거대한 터널형 아파트 안에 농수산물 시장을 집어넣어 아파트 창에서 시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로 돼있다. 렘 쿨하스가 설계해 2015년 완공 예정인 시청 신청사도 건물 중간이 뻥 뚫려 구름 위에 뜬 듯한 모양으로 도심 풍경에 이채를 더할 전망이다. 안네테 마티센은 "로테르담은 계속 성장하고 변화하는 도시"라며 "미래의 로테르담은 더욱 과감하고 창조적인 면모를 띨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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